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對比

Skydoctor2004/04/22 10:51조회 2268

writer  Skydoctor 2004/04/22 10:51조회 2,268
subject  對比
아래 내용은 인터넷신문 서프라이즈에 퍼온 글입니다. 약간 정치적인 칼럼입니다만 유니버설리즘에 입각하여 한번 精讀하시기 바랍니다. 월요일, 도올 김용옥 선생은 제가 오래 전부터 서프인들에게 말하고 싶어 했던 의제 하나를 선점해 버렸습니다. 도올은 이창호나 이세돌 등 우리 젊은 기사(棋士)들의 세계 평정을 말하며 한국인의 우수한 저력을 논했는데, 부족한대로 매우 중요한 시사점을 시청자들에게 던져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골프를 좋아하는 사람끼리 만나 골프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하면 하루가 부족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바둑이라는 정신적 기예(技藝) 또는 스포츠를 중심으로 대화가 통하는 사람들이 만나 이야기를 시작한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할 지 모르겠습니다. 흔히 인생의 축소판이라고도 하고, 우주적 철리(哲理)가 담겨 있다고도 하는 19로(路) 반상(磐上)은 실로 무한한 인간 드라마의 보고(寶庫)입니다. 그러나 제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도올과 마찬가지로, 바둑이 바로 우리 한국인이 얼마나 우수한 자질을 갖고 있는 민족인지를 증명하는 부정할 수 없는 논거라는 점과, 동시에 우리 한국인이 얼마나 자신의 능력에 대해 무지하고 그 계발(啓發)과 고양(高揚)에 인색한 사람들인가 하는 점이었습니다. 하나는 우리의 저력을 말하고자 함이고, 다른 하나는 그것을 살려내지 못하는 무능과 그 원인에 대한 나름의 견해라는 말씀입니다. 바둑의 수가 강하고 약함으로 좌우되는 현실세계의 변화는 기사(棋士) 개인의 수입과 명예일 뿐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상징적으로 또는 내재적으로 의미하는 바는 브라질의 축구가 브라질이라는 국가 또는 브라질 사람들에게 의미하는 바에 절대로 뒤지는 것이 아닙니다. 축구라는 대중적 스포츠에서 브라질이라는 국가가 의미하는 바가 절대적 지존의 위치라 할 때, 바둑이라는 동양의 신비한 멘탈 스포츠 또는 게임에서 한국이 갖고 있는 위치 또한 절대 지존이라는 점에서 동일한 것입니다. 서양에는 아시다시피 체스(서양장기)라는 멘탈 스포츠가 있습니다. 미국과 소련이 우주개발에서 피 터지게 싸울 당시, 미국의 피셔라는 체스 마스터와 소련의 체스 마스터가 양국의 자존심을 걸고 싸웠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체스의 월드 그랜드 마스터는 소련인입니다. 그러나 체스는 이미 IBM이 개발한 Deep Blue II?라는 프로그램이 인간의 지적 능력을 초월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스푸트니크로 우주 개발에 앞섰던 소련이 이내 미국의 월등한 기술과 자원에 밀려난 것과 유사한 점이 있습니다. 바둑은 차원이 다릅니다. 언젠가 컴퓨터가 바둑에서도 인간의 지적 능력을 초월하는 날이 올 수 있겠습니다만, 아직은 턱없이 부족합니다. 어제 제 5회 바둑 올림픽 본선이 개막되었음을 아는 분들은 대부분 바둑 팬들일 것입니다. 이 대회는 중국 항주(杭州) 태생 대만 기업인 잉창치(應昌期) 라는 사람이 거금을 투척하여 창설한 대회입니다. 서울 올림픽이 열리던 1988년에 시작되어 올림픽처럼 4년마다 개최되는 이 대회가 올해 벌써 5회째 열리게 된 것입니다. 제5회 잉씨배(ING'S CUP) 세계바둑대회가 어제 4월 20일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본선1회전을 시작으로 개막 축포를 쏘아 올렸습니다. 한국, 중국, 일본, 대만 바둑4국과 미국과 유럽이 합류, 총 6개국 24명이 우승을 향해 격돌하는 이 대회 본선 1회전에 출전한 4명의 한국 기사 가운데 3명이 승리하여, 16강전에는 전기 우승자 이창호를 포함 4명의 기사가 출전하게 되었습니다. 4년에 한번씩 열려 '바둑올림픽'으로 불리는 잉씨배는 우승상금이 자그마치 40만달러(한화 약 4억6천만원)로 현재까지 세계에서 가장 큰 대회입니다. 1988년 초대대회에 혈혈단신으로 출전한 조훈현 9단이 중국의 녜웨이핑 9단을 꺾고 우승해 당시 한국 사회에 큰 이슈가 된 바 있다. 이 정신적 스포츠 올림픽에서 한국이 그 초대 대회부터 4회까지 우승을 독차지 했다는 사실을 모르는 바둑 팬은 없겠지만, 그것이 갖는 의미를 곱씹어 보고 제대로 된 평가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되는지 의문입니다. 도올은 지난 월요일, 바로 그러한 점을 제기했던 것이며, 저는 오늘 그것을 부연하는 것입니다. 우선 잉창치라는 대만 기업인이 이 대회를 창설하게 된 배경에 대한 이야기가 필요합니다. 2차대전이 종식되고 중국 대륙이 마오쩌뚱에 의해 통일된 이후, 중국인들은 그들의 인구와 오랜 역사 이외의 다른 무언가로 그들의 민족적 우수성을 자랑하고 싶었습니다. 특히 그들을 짓밟고 능욕한 일본에 대해. 그런데 핑퐁 외교를 기점으로 동서냉전이 해빙기로 들어 가던 80년대 중엽, 일본은 중국에게 바둑 국가 대항전이라는 형식의 민간 교류를 제의하였습니다. 당대 최강임을 자신하던 일본이 바둑이란 기예가 발상한 종주국에게 도전하는 형식이었지만, 일본은 이 기예를 500년 가까이 갈고 닦아 발전시킨 현대 바둑의 챔피언이라는 자존심을 걸었고, 이 민간 외교의 이름은 “슈퍼 중일전” 이었습니다. 한국은 말 그대로 왕따를 당했습니다. 상대할 실력이 아니라는 것이었고, 한국은 이의를 제기할 근거가 부족했습니다. 일본이 인정하는 유일한 고수는 조훈현 한 사람이었는데, 그마저 당시 일본 기계를 주름잡던 조치훈과의 형제 대결에서 이상하게 2연패를 당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막상 대회가 열리자, 중국 선수들은 일본 선수들에게 한 수 밀리는 형국이 연출되었습니다. 이기는 사람이 계속 두는 형식인 이 대회에서 일본은 아직도 남아있는 선수들이 많은데 반해, 중국은 주장인 녜웨이핑 한 사람만이 남았던 것입니다. 아마 이 시점에서 일본의 우승을 의심한 일본인은 아무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대륙의 반달곰이라는 애칭을 갖고 있던 이 중국 주장은 남아 있던 일본의 고수들을 모조리 꺾고 중국에 1회 대회 우승을 안겨 주었습니다. (참고로 이 중일 양국의 국가 대항전에는 한국 출신 조치훈이나 대만 출신 임해봉과 같은 일본 기원 소속 초고수들이 출전하지 못했습니다. 조치훈이나 임해봉으로 인해 일본이 우승한다면, 순수한 일본의 우승이라고 자랑하는데 문제가 있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었지요) 이후 이 양국 간의 슈퍼 대항전은 3회인가 4회 더 진행 되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매년 똑같았습니다. 일본의 초반 우세는 항상 녜웨이핑 이라는 중국측 최종 주자의 철벽 방어를 뚫지 못하고 패배의 쓴 잔으로 끝나는 것이었죠. 이 과정에서 녜웨이핑은 일본의 최고수들을 상대로 무려 11연승을 기록하며, 중국 정부는 그에게 “기성” 칭호를 주게 됩니다. 일본 대표들이 머리를 삭발하며 출전해도 끝내 뚫을 수 없었던 이 영웅은 “철의 수문장” 이라는 별명도 얻게 됩니다. 이에 이르러, 본토 출신 대만 거부 잉창치씨는 대륙의 힘을 널리 홍보할 수 있는 수단으로 바둑 올림픽을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가 생각하기에 이 올림픽의 하나 뿐인 월계관이 중국인이나 대만인의 머리에 안착할 것은 100% 확실해 보였던 것이며(녜웨이핑이나 대만 출신 임해봉이 우승할 것이 그만큼 확실해 보였던 시점이었고), 이것은 그의 바둑 관련 사업을 진작시키는 동시에 중국인의 우수성을 알릴 수 있는 그야말로 일석이조나 삼조의 뛰어 난 아이디어 였던 것입니다. 그는 이 대회를 초청베이스로 시작했습니다. 그 뿐 아니라, 그는 당시 통용되던 일본식 룰을 무시하고 자신이 창안한 소위 전만식 응씨룰 이라는 새로운 바둑 룰을 채택합니다. 그가 초청한 대회 출전 자격은 중국계 선수 7명, 일본 선수 6명, 한국 1명, 미국 1명, 유럽 1명 이었습니다. 그가 보기에 바둑 후진국인 한국은 일본에서도 인정하는 조훈현이라는 선수이외에 아무도 중국이나 일본 선수와 겨룰만한 실력자가 없다는 것이며, 싫으면 불참해도 좋다는 배짱이었습니다. 그나마 일본 대표로 출전한 또 한 사람의 한국인 조치훈이 있었다는 것이 위안이라면 위안이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서울 올림픽 직전인 1988년 8월 20일 북경 샹그리라 호텔에서 개막된 이 대회에서, 16강, 8강전을 거쳐 4강에 오른 4명은 중국의 녜웨이핑, 일본의 후지사와, 조치훈, 그리고 한국의 조훈현이었습니다. 실제로는 4강이 한국인 2, 중국 일본 각 1인으로 짜여진 것입니다. 일본 기계의 한 시대를 풍미했던 기인 후지사와는 조훈현의 실전적 스승이었습니다. 한국 바둑의 대부 조남철 선생을 비롯, 김인 국수나 조치훈 까지 일본의 기다니 미노루 문하에서 바둑을 공부하였습니다. 기다니 도장이라고 불리는 이 바둑 도장은 일본 기계에 독보적 위치를 점하고 있었습니다. 현재 일본 기원 이사장을 맡고 있는 대마 킬러 가토 9단을 위시, 임해봉, 오오다케, 고바야시, 이시다 등 이루 이름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실력자들을 배출한 도장입니다. 그러나 지금도 세계 최연소 입단 기록을 갖고 있는 천재 소년 조훈현은 세고에 라는 천재적 노기사의 문하에 들어 갑니다. 그것은 조훈현이라는 소년의 선택이 아니라 세고에의 선택이었습니다. 이 세고에라는 기인은 평생 3사람의 제자를 두었을 뿐인데, 그 내용이 재미있습니다. 그는 한, 중, 일 출신 각 1명씩을 문하에 두었는데, 그들이 바로 대륙 출신 오청원 선생, 일본 관서기원의 대부 하시모도 9단, 그리고 한국의 조훈현이라는 소년이었습니다. 비상한 천재가 아니면 문하에 거두지 않았다는 말이며, 바둑을 아는 분은 그 의미를 헤아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세고에씨의 교육 방식은 대단히 특이하였으며, 어린 조훈현에게 많은 바둑을 두어 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위에서 말한 후지사와라는 화려한 기풍의 독보적 존재가 어린 조훈현의 천재성을 인정하고 사랑하여, 무려 수 백판의 바둑을 두어 줍니다. 그러니 후지사와 9단이 조훈현의 실전적 스승이라는 말은 정확한 표현입니다. 당시, 응씨배 4강에 진출한 후지사와 9단이 한 말은 “세계 최강은 조훈현이다. 결승전은 조훈현과 내가 두게 될 것이다” 이었습니다. 조훈현이라는 사람은 병역의무 때문에 일본 기원 5단 시절 조국으로 돌아 왔습니다. 그리고 공군에서 병역을 마친 조훈현은 다시 일본으로 돌아 가지 않습니다. 일본 사람들은 그의 너무나 뛰어 난 천재성을 아쉬워하며 일본 기원에 그 후 오래 조훈현의 명패를 걸어 놓고, 그가 돌아 오길 기다립니다. 환경이나 미래가 너무나 다른 일본과 한국 사이에서 왜 모든 것이 열악한 한국에 머물기로 결심한 것인지에 대한 해답은 조훈현 국수가 대답할 문제입니다만, 그의 스승 세고에는 조훈현이 귀국 한 다음,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다 자살로 생을 마치게 됩니다. 다시 바둑 올림픽 이야기로 돌아 와, 제 1회 대회의 결승은 후지사와 9단의 소망 섞인 예언대로 되지는 않습니다. 후지사와는 대륙의 반달곰에게 다시 패배하고, 조치훈은 조훈현에게 설욕 당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뿐인 바둑 황제의 자리를 놓고 12억 인구를 대표하는 녜웨이핑과 한국의 천재 조훈현 사이에 일생일대의 결전이 마련됩니다. 3번의 대국은 중국에서, 2번은 싱가폴에서 두어 진, 이 일방적 조건의 대결은 1989년 싱가폴에서 조훈현의 3 : 2 승리로 막을 내리게 됩니다. 이 승리를 기점으로, 한국 바둑은 동양 3국은 물론, 세계 누구도 부정하기 어려운 최강국으로 도약하게 되며, 이 후 대략 17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한국은 거의 모든 세계 대회를 제패하게 됩니다. 그리고 4년마다 열리는 이 대회 역시, 2회는 서봉수 9단, 3회는 유창혁 9단, 그리고 바로 전번기인 4회는 이창호 9단이 우승했지요. 한국의 사천왕이 세계의 사천왕이었으며, 그것도 한국기원 서열순으로 우승하였습니다. 반면, 조훈현으로부터 회복하기 어려운 내상을 입은 대륙의 반달곰, 철의 수문장은 이후 완연한 쇠락의 길을 걷게 되며, 다시는 세계 무대에 그 이름을 걸지 못합니다. 듣기로, 중국 인민들의 바둑 사랑은 거의 축구의 인기에 비견될 정도라 합니다. 그 배경에 바로 녜웨이핑이라는 영웅이 수년간 일본을 통쾌하게 격침시킨 달콤한 추억이 깔려 있음은 불문가지입니다. 중국인들은 축구에서 공한증을 이야기 하는 이상으로, 한국의 이창호를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그 존경의 정도는 우리 한국인이 생각하는 것과는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차라리 외경심에 가까운 것입니다. 그들이 이번에는 이번에는 하고 기대하는 대륙의 젊은 챔피언들이 이창호를 만나 제대로 실력을 발휘하지도 못하고 패퇴하거나, 숫적 우세를 갖고도 번번히 조훈현, 이창호 사제의 벽에 부딪혀 세계 대회에서 쓴잔을 마셔 온 것이 하루 이틀이 아니라 이미 10여년에 이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창호를 석불(石佛)이라는 애칭으로 부르며, 속으로 원하는 것은 달라도 중국 기사 누구와 붙어도 이창호가 이기는 것을 오히려 당연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바둑에 있어서는 공한증이 아니라 존이증(尊李症)이라고 할 것입니다. 중국은 어린 유소년들을 발탁하여 바둑 국가 대표팀을 키워 온 지 오래 입니다. 그러한 인재 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조훈현 이창호 사제의 벽과 한국 신예들의 벽을 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거의 자포자기의 수준에서 최근 다시 전열을 재정비하고 있으나, 현재 한국 바둑의 적은 그들 자신의 자만일 뿐입니다. 신예들이 조훈현 국수와 이창호 국수의 바둑 기예 이외의 인간적 위대함을 깨우치고 계승해 나가는 한, 한국의 무적 행진은 당분간 중국이나 일본이 도전하기 힘든 벽으로 존재할 것이 분명합니다. 2002년인가, LG가 주최하는 세계 대회에서 비금도 출신의 이세돌이라는 천재 소년이 이창호를 번기(단판 승부가 아닌 3판 2승, 5판 3승 등의 대국)에서 누르고 챔피언이 된 적이 있습니다. 그 천재성에서 조훈현이나 이창호를 극복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촉망 받고 있는 이 소년은, 어제 바둑 올림픽 본선 1회전에서 중국 1인자에게 패배하여 탈락하였습니다. 바둑은 기예이고, 1승1패는 병가지 상사라 하지만, 저는 이 소년이 무언가 배워야 할 것을 배우지 않고 있다는 안타까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고수의 실력 차이가 종이 한 장이라 하는데, 그 얄팍한 차이로 선배들이 10년 넘게 세계를 제패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어려도 너무 어린 생각일 것입니다. 조훈현과 이창호에 대한 이야기는 이렇듯 시작하면 끝이 없는 이야기 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판이한 성격과 기풍을 갖고 있는 사제지간으로 바둑이라는 정신적 기예의 분야에서 10년 이상 세계를 제패하고 호령할 수 있었던 것에는 반드시 무언가 만만치 않은 이유가 있다는 것이며, 이들 사제가 함께 끌어 올린 한국 바둑의 전체적 수준을 보며, 오늘 우리가 반드시 인식하고 고양해야 할 민족적 저력과 그 결집 방법에 대한 시사점을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문제는 한 기예적 측면에 국한하여 검토하고 그칠 성격이 아니며, 오늘날의 무한 경쟁적 세계에서 반드시 국가적 이슈로 발전시키고 체계화 시켜야 할, 민족 정체성과 발전 동력에 긴밀하게 연결 되어 있는 문제라는 것이 저의 생각인 것입니다. 무엇이, 도대체 13억의 인구에서 발탁 배양된 천재들도 감히 우러러 보아야 할 이창호와 조훈현의 힘이란 말입니까. 무엇이 400년이 넘는 온축을 갖고 있는 일본인들을 마음으로 복종시키는 조훈현과 이창호의 힘이란 말입니까. 그들이 100년이나 200년만에 나타나는 천재들이고, 우연의 일치로 지금 한국인으로 태어나 활약하고 있는 것 뿐일까요. 그렇다면 지금 그 뒤를 이어 나타나고 있는 신예들의 막강한 힘은 또 무어라 설명할까요. 전성기를 지난 감이 있지만, 일본 기계를 여러 해 완전히 평정했던 조치훈은 또 무엇입니까. 확률적으로 천재의 출현 가능성은 13억의 인구나 1억을 넘는 인구에 더 높은 것이 아닙니까. 게다가 그들은 오랜 전통과 체계적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데 말입니다.             이미 길어진 이야기지만 축약하여 결론을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첫째, 한국 민족의 우수성은 바둑이라는 기예에서만 증명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여자 양궁에서 우리 나라는 오래 동안 세계 최강국의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남자 양궁 역시 여자만은 못해도 최강 수준인 것은 다름없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단순한 경기 종목 하나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우리를 공자가 동이(東夷)라고 지칭한 것은 오랑캐 이(夷)를 뜻한 것이 아니라, 큰 활(大弓)을 잘 다루는 민족이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3000년 전쯤 더 오랜 그 옛날, 동양의 선진국들은 활을 잘 쏘는 자를 지도자로 삼거나 책임 있는 자리에 임용하는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훌륭한 궁술은 심신의 조화와 평정, 강한 힘과 집중력을 요하는 것입니다. 수준에 이르기까지 그러한 요소들이 체화되지 않으면 안 되고, 모든 실패는 자신의 부족함에 있다는 것을 인정하여야 합니다. 바둑과 양궁이 상징하는 것은 실로 인간 개체의 우수성을 상징하는데 멈추는 것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유전자에 면면히 흐르는 자질과 전통을 입증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대한민국 축구 체면이 요즘 말이 아니지요. 그러나 개인으로 가장 고도의 축구적 기술을 구사할 수 있는 축구 아티스트가 우리 나라 사람이라는 것을 아십니까? 황우석 박사팀을 아시지요. 삼성전자가 칩 개발에서 세계적 수준이라는 것도 알며, IMF라는 국가적 재정 위기를 세계에서 가장 빨리 극복한 나라도 우리라는 것을 압니다. 둘째, 우리 민족은 정말 우수한 자질과 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 민족이 겪고 있는 많은 현실적 문제들의 원인은 무엇이며, 어떻게 그런 것들을 제대로 가닥 짚어 해석하고 방안을 도출하여 문제 해결의 길로 나갈 수 있을까요. 문제는 우리 스스로 그러한 자질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자각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며, 또한 그것을 입증해 주는 전통을 상실했다는 것에 기인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들을 발굴, 배양하는 눈이 어두워졌고, 사회적 분위기 또한 그런 천재적 자질의 발현을 적극적으로 기대하지도 않고, 그 성장과 발현을 위한 시스템 마련에도 미숙하고 등한한 것입니다. 때로 한국인의 끼와 신명을 이야기하는 자들이 있습니다만, 그것을 민족의 보편적 자질로 평가하는데는 인색하기 짝이 없습니다. 때문에 모든 천재성을 돌발적인 것으로 보고, 천박한 흥미거리로 몰아 오히려 정상적 발육을 저해하는 경우가 흔하게 나타납니다. 우리가 스스로 우리 자질에 합당한 자긍심과 확신을 갖지 못하는 이유를 한 마디로 말한다면, 우리가 기억할 수 있는 일반적 역사가 부정적 노폐물들로 완전히 화석화 되다시피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가깝게는 일제가 우리 민족에 주입, 세뇌한 자기 비하 습관과 열등감, 그리고 그들이 태우고 폐기된 우리 역사를 대신하여 교육시킨 종속적 반도 식민사관이 그러한 노폐물의 상층부를 구성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일제가 칠해 놓은 그 왜곡된 표층 위에, 아직도 현실적으로 이 사회를 지도한다며 온갖 반민족적 행위를 자행하고 있는 친일 반민족 쿠데타 수구 세력들이 칠해 놓았고 아직도 칠하고 있는 더러운 노폐물들이 여름날 아스팔트처럼 눌러 붙어 있는 것입니다. 이것들만으로도 우리 민족이 자신의 참된 정체성에 접근하여 그 우수한 자질과 전통을 발굴하고 재구성하여 오늘 필요한 동력으로 삼는 일은 불가능에 가까운 작업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 뿐 아니라, 20세기 일제 침탈 이전에 이미 우리 민족이 잃어 버렸던 자기 정체성과 위대한 자질을 입증하는 전통들 또한 너무나 많습니다. 거꾸로 올라가며 언뜻 살펴 보아도, 공맹을 조상 삼은 유교의 적폐, 현실적 삶의 가치를 축소시킨 불교의 적폐, 민족의 기상을 외세의 힘을 빌어 박살 낸 김춘추의 삼국통일, 대륙 신흥 세력에 힘으로 밀리며 쇠퇴한 동이족의 강력한 상무 기상과 홍익인간의 사상 등, 이루 헤아릴 길 없는 정체성 상실의 역사가 바로 우리의 역사인 것입니다. 셋째, 우리 민족은 좌우간 인류 역사상 가장 뿌리 깊고 뼈대 있는 민족의 하나인 것은 의심의 여지 없는 사실입니다. 단지 이러한 선언적 규정이 치졸한 자위적 민족주의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사실과 전통에 의해 입증되려면, 구체적이고 치열한 역사 재구성을 통한 확인 작업이 필요합니다. 이 작업이 지금도 체계적인 국가적 프로젝트로 자리 잡고 있지 못하며, 따라서 커다란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안타깝고 애석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정부와 역사학계의 소명의식과 분발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나마 위안인 것은, 과거의 확인 작업이 역사에 덮어 씌워진 화석화된 각질들을 제거하는 어려움에 봉착하여 지지부진 할지라도, 우리의 오늘을 평가하고 또한 미래를 위한 올바른 청사진을 작성하여 실천하는 과정에서 우리 민족의 자질과 전통적 저력에 대한 보다 실효성 있고 전향적인 증명이 가능할 것이라는 희망입니다. 역사적 구명과 복원도 중요하지만, 오늘과 미래에 대한 올바른 평가와 기획에 소홀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미래지향적 작업이 지금 현존하는 친일 반민족 쿠데타 독재 수구 세력들을 그대로 두고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것은 마치 일제의 문화말살 정책 속에서 우리 정체성을 찾는 것처럼 비현실적이고 몽상적 생각일 따름입니다. 이번 선거에서 한나라당을 지지한 많은 유권자들의 대부분은 그릇된 역사 인식과 민족 정체성 상실에 시달리는 피해자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을 탓하기 전에 우리는 그들에게 올바른 역사 의식부터 가르쳐 주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작업의 출발은 온 국민을 상대로 그릇된 역사 인식과 소아적 집단 이기 주의를 강매해 온 조선일보 등의 친일 반민족 쿠데타 찬양 냉전 수구 집단들을 처단하는 일에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끝없이 자신을 비하하고 열등감을 갖도록 조장해 온 반민족 행위자들에 대한 엄중한 처단을 도외시하고, 위장된 상생의 논리에 속아, 그들이 빅딜이니 뭐니 이름하여 내어 놓는 또 다른 야합의 유혹에 빠진다면, 이는 반민특위를 애국지사 척살과 학대로 바꾼 이승만의 행태와 구분키 어려운 또 다른 역사적 퇴행이 될 것입니다. 친일 반민족 쿠데타 유신독재 삼당야합 IMF환란초래 탄핵반란 냉전수구 기득권 세력은 이러한 일련의 역사적 작업을 민족 통합과 민생 경제 최우선이라는 두 가지 명분으로 저지하고 반발하며, 무산시키려 모든 힘을 결집하고 있으며, 온작 잔 꾀들을 동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민족의 0.01%도 채 안 되는 극소수의 프리메이슨적 네트워크에 의해 조정되고 있는 일단의 세력일 뿐입니다. 이 네트워크의 조정 세력들은 자신의 생존과 기득권 수호를 위해 많은 국민과 유권자를 기망하고 이용하는데 도가 트인 작자들입니다. 그들의 정체를 드러내어 처벌하는 일에 국가적 총력을 경주하는 것이 바로 민족 정체성을 회복하고, 우리의 우수한 자질을 현양, 고무하여, 미래를 위한 결집된 도약을 가능케 하는 전제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이러한 사실을 되도록 많은 국민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설파하는 것과, 숨어 잠복하려는 세력의 중추를 드러내어 그들의 독아(毒牙)를 제거하는 것이 오늘 우리 모두의 시대적 소명이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진정한 시민혁명은 지금 비로소 시작된 것이며, 우리 앞에 놓인 장애물들이 이미 극복한 장애물보다 더 많고 난이도가 높은 것임은 말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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