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D 칼럼

영랑과 강진 그리고 고려청자.

Skydoctor2010/12/24 16:20조회 2292

writer  Skydoctor 2010/12/24 16:20조회 2,292
subject  영랑과 강진 그리고 고려청자.

 강진읍 초입 야트막한 산정에 새겨진 고려청자입니다.

그리고 강진하면 떠오르는 시인  영랑 김윤식의 "모란이 피기까지"

생가입니다.

해서 고등학교땐 "강진과 영랑"의미가 자동으로 머리속에 각인되었습니다만

세월이 흘러 오늘에는

고려청자가 쉽고도 자연스럽게 그리고 발 빠르게

우리의 맘을 점령하네여.

참고로 청자모양의 항공촬영은

"BTL 강진읍 하수관거" 촬영때 

그러니 시기적은론 여느땐간 명확히 가늠하긴 가물가물하지만

개락적으로 2003년경이라 사료됩니다만

하늘에서 내려다본 이미지가

넘 좋아서 한컷 날렸던 기억은 새록새록 하네요.

언 10여년 지난 오늘에야 써먹을 수 있는 기회를 맞네요.

모란이 피기까지는[ 김영랑(金永郞 1903∼1950)]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윈 설움에 잠길 테요.


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 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Skydoctor (2010-12-24 16:35:44)
전라남도 강진군 대구면일대엔 고려청자 가마터가 188곳이 있답니다
그리고 가마터의비중은 대략적으로 50%가 넘었다합니다.
14세기-19세기 고려청자의 제작이 주로 이뤄젔으며
국가사적 제68호로 지정되었으며
옛날엔 고려창자의 의미란
부와 명예 그리고 예술의혼이 담겨져있다하여
주로 고간대작들이 많이 애용하였기도 했으나
신분의 척도로도 상징되었다합니다.